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고후 4:18)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을 창의 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시도한 사람들입니다. 현상에만 집중하지 않고 가능성을 항상 생각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을 꿉니다.

*얼마 전에 월드컵에서 보였던 한국경기는 “동네축구”의 모습에서 “선진축구”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공이 없는 빈 공간을 찾아 가는 것이 훌륭한 축구선수입니다.

성경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실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즉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축복 등등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게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말들입니다.

*출애굽 하는 백성들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야 할 곳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 곳에 가기 위해 그들은 출애굽을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을 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만나가 필요할 때, 만나를 주셨고, 메추라기가 필요할 때는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물이 필요하면, 반석에서 물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나안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땅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땅임을 부정했습니다. 그 결과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보지 못했던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해야 했습니다. 무서운 현상만 바라보았던 그들에겐 목표가 없었던 것입니다.
날마다 경험 되었던 하나님을 결정적인 순간에 부정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는데도, 외면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나에게 날마다 간섭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곳에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하면, 결코 갈 수 없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실력을 주셨습니다.

*IVY leagues-한국 학생들이 아이비리그에 입학하는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비리그에서 낙제하는 학생들의 비율도 가장 높게 나타납니다. 그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생애를 통한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부모들에게 항상 들어왔던 것인데, 그것을 성취하고 나서 그 다음 목표가 상실된 것입니다. 학교졸업 후의 세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순종하는 아브라함과 보이는 현상 만을 쫓는 롯과 세상의 보이는 것을 놓지 못하는 롯의 아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롯의 아내는 심판으로 멸망하는 소돔에 미련을 가지고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계획을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즐기던 것을 돌아보는 슬픈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따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고 있지나 않습니까? 우리도 앞에 보이는 공만 쫓아다니는 동네 축구 선수는 아닙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선진축구를 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자들과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실패자의 모습으로 보고 자기들의 옛 생활로 돌아가는 삶을 택했다. 십자가의 죽음 속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열심이 십자가에 담겨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보이는 현상으로 십자가의 죽음만을 바라보고 그 속에 담긴 부활의 역사는 놓쳐버린 것입니다.

주님은 보이는 십자가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은 보이는 너머의 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꿈이 바로 우리를 향한 구원이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보이는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이란 선물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그가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짐은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허락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사도바울은 이 세계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이 날로 새로와 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성경이 읽혀지지 않습니다.
그 분이 원하는 세계를 보지 못하면, 내가 죽어야 할 때 죽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용서해야 할 때 용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지 못하면, 나는 기도할 수도 없습니다. 헌금을 들릴 수도 없습니다. 섬길 수도 없습니다. 겸손해야 할 때, 겸손하지도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향해 비판하고 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기 시작하면,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 진지해지고, 겸손해 집니다. 겉사람을 향해 서기보다는 속사람이 강건해 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믿음으로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 동참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그 곳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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